"잘하려는 마음이 나를 가릴 때"-부산심리치료
- cinogun
- 2025년 12월 13일
- 2분 분량

요즘 상담 장면에서 자주 잃어버리는 부분이 있어요.
그건 바로 제가 오래 가지고 있던 패턴,
"좀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이 마음은 참 애매한 자리예요. 좋은 의도지만,
때로는 그 마음이 너무 앞서서
‘지금 여기’를 놓치게 만들 때가 있거든요.
오랜 시간 다듬고 싶은 부분이에요.
사실 "다듬고 싶다"는 말 자체가 이미 저의 프로세스라서, 스스로 웃음이 나기도 해요.
(부산)심리치료를 하다 보면 내담자들이 이런 말을 자주 하세요.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떻게 하면 바꾸거나 고칠 수 있나요?”
그 질문을 들을 때면 저는 잠시 멈춰요.
그 ‘멈춤’이 예전엔 쉽지 않았지만,
수련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가능해졌어요.
이 질문 속에는 여러 가지 마음이 숨어 있어요.
빠른 해결을 원해서일 수도 있고,
수동적인 성향 때문일 수도 있고,
때로는 분노나 의존에서 나오는 말일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그 의미를 하나로 단정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제 안에서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어보려고 해요.
“내담자가 지금 어떤 방향을 가르키고 있는 걸까?”
그 순간은 늘 저에게 긴장이 오기도 하고
‘잘해야 한다’는 제 내면의 목소리와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종종 ‘내가 지금 무언가를 고쳐주려는 자리에 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해요.
그러면 조금씩 자리를 옮길 수 있어요.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바라보는 사람으로요.
상담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봤던
영화 「패치 아담스」 속 장면이 떠올라요.
주인공 헌터 아담스는 어린 시절 불행하게 자라
정신병으로 자살을 시도한 끝에 스스로 병원을 찾아가요.
그곳에서 천재 박사, 아더 멘델슨을 만납니다.
아더 ; "자네, 손가락이 몇 개로 보이는가?"헌터 ; "당연히 네 개지요."아더 ; "네 개? 네 개? 이런, 멍청이! 제대로 된 놈이 하나도 없군!"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던 질문이었어요.
하지만 밤이 되어 헌터는 아더를 다시 찾아가 묻죠.
헌터 ; "손가락, 답이 뭐죠?"아더 ; "너는 항상 정답을 아는 똑똑하고 젊은 사람이지, 맞지?"
그리고 아더는 헌터의 손을 잡고 말해요.
“몇 개로 보여? 너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해결책을 볼 수 없어.몇 개로 보여? 손가락을 지나서 봐봐!”
그때 헌터는 아더의 손 너머를 바라봅니다.
네 손가락은 흐릿해지며 여덟 개로 겹쳐 보이죠.
아더는 말합니다.
“다른 이들이 못 보는 걸 봐. 매일 세상을 새롭게 봐.만일 내게서 미치고 한맺힌 남자밖에 보지 못했다면,너는 처음부터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
이 장면이 오래 제 마음에 남았어요.
‘손가락만 보면 그 너머의 사람을 놓치게 된다.’
이 말은 상담뿐 아니라,
삶 전체에도 닿는 이야기 같아요.
우리는 흔히 문제의 ‘손가락’을 보며 살아가죠.
내가 해결해야 할 것, 고쳐야 할 것,
부족한 것, 혹은 누군가의 결함.
하지만 그 너머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의 숨결, 이야기, 그리고
아직 피어나지 않은 가능성이 숨어 있죠.
저 역시 상담자로서 그 ‘너머’를 보고 싶어요.
조급하게 잘하려 하지 않고,
문제를 붙잡기보다 그 사람을 바라보는 자리.
그 자리에서 진짜 변화가 일어나더라고요.
때때로 저는 상담실을 나서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여요.
“오늘 나는 손가락을 지나서
그 사람을 볼 수 있었을까?”
삶의 어느 순간이든 우리는 문제에 시선을 빼앗기기 쉬운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문제의 이면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죠.
그 사람을 바라볼 때, 비로소 관계가 회복되고,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아요.
상담도, 인생도 결국 같은 길을 걸어요
잘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보고’, ‘머물고’, ‘함께 있기’.
그게 진짜 잘하는 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오늘도 제 마음 한켠에서 아더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해요
“손가락만 보면,
그 너머의 사람을 놓치게 된다.”
"부산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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