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고 싶다는 말 뒤에 있던 마음"-부산심리치료
- cinogun
- 2025년 12월 13일
- 2분 분량

몇 주 전부터 아이는 오기 싫었다고 했어요.
와서 그 어렵고 힘든 감정과 다시 만나게 될 게 두려웠다고요.
지금은 어느 정도 평온하고, 행복감도 느끼고 있는데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야 하고, 그 감정과 만나게 된다면
한동안은 사람이 많은 거리를 이어폰 없이 걸어야 한다며
아이는 작게 속삭였어요.
그 말 속에는 상담자에 대한 미안함이 함께 묻어 있었어요.
그런데 이 모습은 낯설지 않았어요.
이 아이를 몇 년간 만나면서 자주 보아왔던 모습이었거든요.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어요.
부모님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상담을 그만두었고
재작년에는 가족 이야기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죠.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어?”
아이는 세 가지 감정을 말했어요.
속상함과 무력감, 그리고 외로움..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력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가족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동생이 아픈 마음을 겪고 있어도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어요.
최근에는 친구의 고민을 들으면서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해요.
돕고 싶지만,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감각.
그 앞에서 몸이 굳어버리는 느낌.
그 무력감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 마음 한 켠이 조용히 반응했어요.
이 감정은, 저에게도 아주 익숙한 감정이거든요.
전쟁통과 같았던 저희 가족 안에서
겨우 7~8살이었던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착한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었어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올 때에만
잠시 부모님의 미소를 볼 수 있었죠.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가족 안의 전쟁은 멈추지 않았어요.
그때의 저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너는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들려”
그 말에 아이는 잠시 멈추더니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어요.
도움을 받는 사람은 한심하고
미숙한 어린아이 같다고요.
그래서 다시 물었어요.
“너에게 어른의 모습은 어떤 사람이니?”
아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어요.
“혼자서 척척 해결하는 사람”
그 말을 천천히 되돌려주었어요.
“너는 혼자서 척척 해결하지 못하는 너에게 화가 났고
무력감을 느끼고 도망을 가려고 하는 거였구나”
그 순간 아이의 눈빛이 달라졌어요.
조금 전과는 다르게 또렷했어요.
자기를 정확히 들킨 사람처럼요.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이렇게 물었어요.
“니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을 선생님이 어떻게 도울 수 있니?”
아이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질문해 주세요…”
참 반가웠어요.
저에게 그 말은
혼자서 다 해내야 하는 어른의 자리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자리로
조심스럽게 돌아오는 순간처럼 느껴거든요
어쩌면 성장이라는 건
완벽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자신을 외면하지 않는 연습일지도 모르겠어요.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이
다시 관계 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아이의 용기였고, 선택이었어요.
오늘 저는
그 선택을 함께 지켜볼 수 있어서
참 반가웠어요.
부산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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