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이 모여 하나가 되는 이야기" — 척의 일생과 게슈탈트, 부산심리치료
- cinogun
- 3일 전
- 3분 분량

2025년의 마지막 날, 아내와 함께 영화의 전당에 갔어요.
아내가 며칠 전 산책길에서 추천해준 영화였어요.
제목은 〈척의 일생〉, 스티븐 킹 원작이라고 했죠.
사실 그 이름만 들었을 때는 어떤 영화일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저는
거의 숨을 멈춘 채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정교했고,
이야기의 배열 방식은 너무도 낯설고도 치밀해서,
보는 내내 “이 감독은 정말 천재구나…”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계속 나왔어요.
집에 돌아와서는 관련 리뷰를 찾아보기도 했고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나는 이 영화를 게슈탈트적으로 봤구나.’
그래서 그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려고 합니다.
너무 길어질까 봐 걱정하면서도요.
1.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이 영화는 척의 삶을 시간의 역순으로 보여줘요.
죽음에서 시작해서, 중년을 지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죠.
보통 우리는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걸까요?
저는 오히려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비추는 개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죽음에서 시작하는 이 구조가 꽤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 속 히피 선생님이 어린 척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쥐고 말하죠.
“누군가의 머리 속에는 하나의 우주가 담겨있어”
이 장면이 참 오래 남았어요.
게슈탈트에서 말하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는 말과 너무 닮아 있었거든요.
인간은 정보를 조각으로 경험하지 않고,
의미 있는 형태로 조직해서 지각하죠.
이 영화는 바로 그 명제를 ‘삶 전체’에 적용한 실험처럼 느껴졌어요.
처음 우리는 몰라요.
척이 누구인지, 왜 중요한지, 왜 사람들이 계속 그의 이름을 말하는지.
그래서 관객은 자동으로 의미를 찾고, 관계를 추론하고,
공백을 채우려는 긴장 상태에 들어가요.
그리고 그렇게 하나씩 조각을 맞추다가 어느 순간,
“아…” 하고 하나의 삶이 떠오르죠.
그때 우리는 단순히 이야기를 본 게 아니라,
하나의 형태를 완성한 셈이에요.
2. “하나의 형태다”
게슈탈트 이론에는 전경–배경(figure–ground)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처음에 척은 인물이 아니라 현상처럼 등장해요.
광고판 속 문구, 사람들의 대화 속 이름,
사회적 상징 같은 배경으로만 존재하죠.
그런데 점점 그의 삶이, 감정이,
관계가 드러나면서 척은 영화 속에서 전경으로 떠올라요.
관객의 지각은 이렇게 이동해요.
“척이라는 현상” → “척이라는 인간” → “척이라는 하나의 삶”
이 이동 자체가 하나의 형태 조직화 과정이에요.
어쩌면 우리는 이야기를 따라간 게 아니라, 의미를 구성한 셈이죠.
3. “삶은 사건들의 합이 아니라 하나의 의미 구조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말해요.
인간은 개별 자극이 아니라 의미 있는 패턴을 지각한다고요.
척의 삶도 사건 A + 사건 B + 사건 C의 합이 아니라
저는 하나의 정서적·의미적 구조로 지각되었어요.

척에게서의 춤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어쩌면 어린 시절 좌절된 꿈처럼 보였어요.
그는 스스로 묻죠.
“내가 왜 그 드럼 비트 앞에서 멈추었나?”
그 드럼 소리는 할머니가 냄비를 두들기던 소리와 겹쳐지고,
가족의 죽음과도 묘하게 연결되어요.
흥미로운 건, 척은 부모와 동생의 죽음 앞에서도
큰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요.. 왤까요?"
아내는 이 부분에서 많은 생각이 든다고 했어요.
불우한 환경이었지만, 어쩌면 잘 자란 사람 같다고요.
그 말이 오래 남았어요.
척의 인생이 어느새 아내에게 전달이 되고 의미를 일으키는 것 같았어요.
이 모든 것들은 각각 흩어진 정보 같지만,
관객에게는 하나의 ‘삶의 리듬’으로 조직돼요.
그래서 이 영화는 줄거리보다는
분위기, 감정의 톤, 반복되는 상징이 더 중요하게 사용된 것 같아요.
4. "대화는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의 것이다”
교수님이 자주 하시던 말이 있어요.
“이야기는 화자 중심이 아니라 듣는 청자 중심이 되어야 해요.”
이 영화는 그 말을 정확히 보여줘요.
저자가, 감독이, 연출자가
관객에서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기때문에
관객은 수동적으로 이야기를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척의 일생을 구성하는 ‘형태 구성자’가 되는 거예요.
영화에는 빈칸이 많고, 설명은 적고, 연결은 암시적으로 보여줘요.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자동으로 연결하고, 통합하고, 해석하고,
자신의 경험을 덧입혀 하나의 형태를 완성하게 되죠.
아내처럼요
이것은 게슈탈트 심리학이 말하는
‘능동적 지각자(active perceiver)’ 모델과 정확히 닮아 있어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저는 “좋았다”라는 말보다
“고맙다”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어요.
"삶이 꼭 위대하지 않아도 되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영화 같았거든요."
그저 하나의 형태로 완성되어 가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영화처럼 느껴졌어요.

아직 저 안에는 영화에 대한 영감과 느낌이 많이 남아 있어요.
오늘 글을 통해 밖으로 드러내보려고 노력해봤는데
역시 잘 꺼내지지 않는 것 같네요.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를 마음에 남겨둬요.
그리고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여러 지인들)에게 안부 핑계삼아 말을 건네고 있어요.
부산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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