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코치에게도 휴가를 줄 때”-부산심리치료
- cinogun
- 10월 25일
- 2분 분량

이 아이는 매년 나와 만나는 것 같아요.
벌써 6년째예요.
처음 만났을 때가 아직도 선명해요.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게 너무 힘들어하던 그때,
나는 마치 커다란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무슨 질문을 해도 아이는 “모르겠어요”라는 말만 했고,
결국 눈물이 맺히곤 했죠.
그 눈물 뒤에는 말하지 못한 마음의 무게가 있었어요.
그때 나는 느꼈어요.
이 아이의 마음속에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방’이 하나 있다는 걸요.
이듬해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가족이 아닌 ‘꿈’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뜨개질, 인형, 책, 노래…
아이의 말 속에는 반짝이는 세계가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아이는 엘리트 운동선수였죠.
매일 반복되는 훈련, 기록, 성적, 경쟁.
그 안에서 아이가 꿈꾸는 세상은 너무 멀리 있는 듯했어요.
그때 나는 마음 한켠이 늘 조용히 불안했어요.
‘이 아이는 지금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뛰고 있는 걸까?’
그 답은 그해엔 들을 수 없었어요.
시간이 흘러, 작년에 다시 아이를 만났을 때
그 아이는 다리를 다쳐서 실망한 얼굴로 찾아왔어요.
"이제 다시 뛸 수 있을까요?"
그 물음 속엔 단순한 통증 이상의 두려움이 있었어요.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듯한,
그 공허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요.
그리고 지지난주,
그 아이가 다시 나를 찾아왔어요.
이번엔 조금 다른 눈빛이었어요.
조심스러운 듯, 그러나 단단한 결심이 느껴지는 눈빛이었죠.
“저… 운동 그만뒀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해온 운동이었고
그 아이에게 운동은 삶의 거의 전부였거든요.
그 말을 꺼내는 동안 아이는 아주 조용했어요.
그 조용함 안에는 슬픔도, 해방감도, 그리고 두려움도 섞여 있었어요.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놀라웠어요.
“병이 찾아왔어요.”
그 아이는 자신의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치는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어요.
“쉬면 안 돼. 이 정도로는 부족해. 더 해야 해.”
그 목소리는 늘 아이를 몰아세웠대요.
그리고 그 목소리를 없애고 싶다고 했어요.
“이제 좀 조용해졌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 말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아이가 자신을 몰아붙여 왔는지를 느꼈어요.
그건 단순한 훈련이 아니라,
자신 안의 ‘감독’에게 인정받기 위한 싸움이 아니었을까요?
그날 아이는 조용히 덧붙였어요.
“엄마 아빠한텐 말 안 했어요.
특히 엄마는 알면 너무 상처받을 거예요.”
나는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바라봤어요.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싸우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어요.
엄마가 늘 울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죠.
그래서,
그 엄마를 더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그 마음이 너무 선명하게 전해져서
가슴이 짠했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너는 엄마를 약한 엄마로 보고 있구나.
그 엄마 앞에서는 아파도 힘들어도 말을 할 수 없었겠다.”
잠시 정적이 흘렀어요.
그 아이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그래서요, 제 안에 코치를 뒀어요.”
그 말이 마음에 깊게 박혔어요.
‘내 안에 코치를 두었다.’
그건 아이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또 다른 ‘나’였어요.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약해지지 않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 코치는 늘 말했겠죠.
“울지 마, 버텨, 더 해.”
그 목소리가 아이를 지탱해 주었지만
이제는 그 코치가 아이를 병들게 한 거예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어요.
우리 안에도 각자의 ‘내면의 코치’가 있지 않을까요?
칭찬받고 싶어서, 실망시키지 않으려 해서,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어서 만들어낸 목소리.
그 코치는 때로 우리를 일으켜 세우지만,
때로는 우리를 너무 몰아붙이죠.
어쩌면 ‘자기를 돌본다’는 건
그 코치에게 잠시 휴가를 주는 일일지도 몰라요.
“이제 괜찮아. 잠시 쉬어도 돼.”
그 한마디를 자신에게 건넬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나로 설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오늘도 그 아이가 조용히 자신을 다독이고 있기를,
그 코치에게 따뜻한 휴식을 주기를,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빌었어요.
부산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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