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라는 이름의 사랑"-부산심리치료
- cinogun
- 2월 11일
- 3분 분량

며칠 전,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어요.
“폭식을 해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많은 밤들이 들어 있는 것으로 들렸어요.
말끝이 조금 흐려졌고, 고개는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죠.
그는 늘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간단히 편의점에서 해결하고
저녁이 되면 폭식을 한다고 했어요.
몸에 나쁜 인스턴트 음식만을 먹는다며
오늘은 이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 자신을 어떻게 인지하세요?”
이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어요.
정서적 허기인 것 같다고요.
그 말이 참 정확하게 들렸어요.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마음이 비어 있는 상태.
채워지지 않는 어떤 공백 말이에요.
그는 초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해주었어요.
그때의 그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았다고 했어요.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고
운동시간이면 늘 그의 이름이 불렸다고요.
그 시절의 그는
‘함께 있음’이 자연스러운 아이였던 것 같았어요.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상황은 달라졌대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인기가 사라졌고
그는 점점 외로워졌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이유를
세상이 아니라, 타인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서 찾았다고 했어요.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단단해졌고
결국 그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되어갔어요.
그 마음은 성인이 되어서
자살 시도라는 극단적인 순간까지 이어졌죠.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자기혐오는 더 깊어졌다고 했어요.
그는 조용히 덧붙였어요.
“그래서 저는 타인들과 같이 식사하는 자리가 싫어서 혼자 먹어요...”
그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게 너무 싫었다고요.
먹는 모습, 식욕, 욕망, 초라해 보일까 봐.
그래서 일을 하는 시간 동안은
가면을 쓰고 지낸 것 같다고 했어요.
괜찮은 사람처럼.
밝은 사람처럼.
문제없는 사람처럼.
하루 종일 그렇게 버티고 나서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그는 낮 동안 가면을 쓰고 힘들었던 자신에게
보답을 해주듯 음식을 먹었다고 했어요.
그에게 음식은
위로였고
보상이었고
선물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물었어요.
“그러면 당신의 몸은 음식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이예요?”
그는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말했어요.
“고역이고 너무 싫어요”
그 말에는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담겨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죠.
“당신은 음식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하시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것.
원하지만 거부하고 싶은 것.
그 안의 모순이 그를 더 괴롭히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물었어요.
“그러면 싫어하는 음식을 왜 선물이라고 하시는거죠?”
이 질문 앞에서 그는 멈췄어요.
혼란스러운 얼굴로 잠시 바닥을 바라보다가 말했어요.
“글쎄요..”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어요.
그 침묵이 참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살아온 방식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 같았거든요.
그때 문득 제 안에서도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저도 오래도록
음식은 곧 사랑이라는 공식으로 살아왔다는 걸요.
어릴 때 힘들면
“밥 먹자”라는 말이 먼저 건네졌고
울면 간식이 나왔고
잘 참으면 맛있는 걸 먹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은
오직 하나뿐이었던 거예요.
‘먹는다’는 행동.
지치면 먹고
외로우면 먹고
텅 비면 먹고.
그때는 몰랐어요.
그게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그 역시 그랬던 것 같아요.
그에게 음식은
자기를 미워하면서도
그래도 버려지지 않기 위해 붙잡고 있던
유일한 연결이었는지도 몰라요.
스스로를 싫어하면서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기 위해
먹는다는 방식으로 자신을 붙들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음식은 선물이면서 동시에 고역이었고
위로이면서 동시에 벌이었던 거예요.
그날 우리는
폭식을 멈추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대신 이런 질문을 마음에 남겨두었어요.
‘당신은 음식 말고,
당신에게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을까요?’
아직 답은 없어요.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왜 그렇게 먹어왔는지는
조금 알게 되었을 거예요.
어쩌면 우리는
잘못된 방식으로라도
살아남기 위해 애써왔는지도 몰라요.
누군가는 술로,
누군가는 일로,
누군가는 음식으로.
그 방식이 아프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는
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고
버텨보려는 의지가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조금씩
다른 사랑의 언어를 배워가면 좋겠어요.
"먹지 않아도
버텨도 괜찮은 밤이 있다는 것.
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꼭 음식만은 아니라는 것을."
부산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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