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 각자의 속도로.."-부산심리치료"
- cinogun
- 2월 11일
- 2분 분량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어요.
그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는데,
다시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며칠 전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어요.
피아노가 치고 싶다고..
아내는 오래전부터 피아노에 대한 꿈이 있어요
그래서 전자피아노를 하나 구입했어요.
그러자 아내가 웃으며 말했어요.
피아노 위에 걸어둘 그림이 있으면 좋겠다고요.
그 말 덕분에 오랜만에 종이와 연필을 꺼내 들게 됐어요.
작년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참 좋았어요.
집중도 잘 되었고, 그 시간 자체가
저를 편안하게 해주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무언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리는 행위 자체가 저에게는 쉼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한동안 손을 놓고 나니 다시 그리려는 순간이 많이 어색하네요.
연필을 쥔 손도 낯설었고, 빈 종이를 바라보는 시간도 길어졌어요.
뚝딱 그림을 하나 그리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을 그리기까지의 시간은 참 길다.”
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는데,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에게는 그림도 그렇고, 수련도 그렇고, 논문도 그런 것 같아요.
마음은 이미 출발해 있는데
몸은 한참 뒤에야 따라오는 것처럼요.
몇 주 전부터 (부산심리치료) 방문하는 그녀가 있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삶의 의미도, 살아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다고 했어요.
하루 종일 집에 누워서 시간만 보내는 자신이 참 싫다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는 것처럼 저는 느껴졌어요.
그녀에게는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있어요.
저는 그쪽 세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요.
그래서 공감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솔직히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녀는 몇 주 동안 상담 시간마다 아이돌 이야기를 했어요.
"이 친구와 화상통화를 해요..
또 이번에 굿즈를 샀어요"
어느 날은 이런 말까지 했어요.
곧 아이돌 그룹이 해체하게 된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그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에게 이 아이돌그룹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지금의 삶을 붙들어주고 있는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얼굴도 모르는 그 친구들이
그녀를 하루하루 살아가게 붙잡아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마음 한편으로는 그 친구들이 참 고마웠어요.
그런데 며칠 전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어요.
먼 길을 와서 만나는 상담 시간 동안
계속 아이돌 이야기만 이어지다 보니
그녀의 삶을, 그녀의 마음을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제 마음이 커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난주에는 제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어요.
그러자 그녀는 많이 상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선생님과 저는 안맞는 것 같아요. 이쪽 세계를 모르시니 이해를 못하시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마음에도 서운함이 가득 차올랐어요.
이해하고 싶어서 꺼낸 말이
오히려 그녀를 멀어지게 만든 것처럼 느껴졌어요. ㅠ
그녀는 첫 상담에서 이런 말을 했었어요.
“작은 바람을 품에 품었노라고”
이 말은 그녀가 작은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어요.
그래서 저는 작은 바람을 품고 있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어요.
“당신의 서운함과 화를 저에게 표현해주신다면
저는 너무 기쁠거예요”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제 말을 천천히 따라 했어요.
“저는 선생님에게 화가 났어요.저의 마음을 공감해주지 않아서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이상하게도 참 기뻤어요.
그녀가 화를 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직접 건네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아주 작은 한 발을
앞으로 내딛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림을 다시 그리기까지
저에게도 꽤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녀가 자신의 서운함과 화를 말하기까지도
아마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삶은 어쩌면
잘 살아내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까지의 시간을
조용히 기다려주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녀가 나가는 길에 문앞에서 저를 짧은 시간 쳐다봤어요.
그 눈빛은 저를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이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 진짜 만나보아요.
사람과 사람으로요"
부산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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