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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것은 사랑이었을지도.."-부산심리치료

2월 11일
3분 분량


부산심리치료

몇 년 전,

모래상자를 이용한 집단 프로그램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날의 주제는

“사랑의 자리”였어요.

피규어를 이용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자리를 표현해보자’는 시간이었죠.

​

질문이 던져지자

다른 선생님들은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피규어를 고르고, 자리를 만들고,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었죠.

​

그런데 저는

한참을 꼼짝하지 못한 채 앉아 있었어요.

그 질문이

제 안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에요.

​

“나에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이 있었을까?”

​

곰곰이 떠올려보려는 순간,

이미 제 얼굴에는 인상이 찌푸려져 있더라고요.

​

어린 시절의 우리 집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너무 다른 환경과 상황 속에 있었어요.

​

기억을 더듬으려 하면

따뜻함보다는 긴장과 조심스러움이 먼저 떠올랐고,

그래서 저는 그 시절을 잠시 내려두기로 했어요.

대신

'지금의 나'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그때 떠오른 자리는

의외로 아주 분명했어요.

​

바로

“아내와의 식사 자리”였어요.

피규어를 하나씩 옮기며

이렇게 놓아보고, 저렇게 고쳐보며

자리를 천천히 꾸몄어요.

그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죠.

​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자체를 떠올리기만 해도

사람을 조금 말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나에게 사랑이라는 건 음식이구나.”

저는 옛날사람이기도 하고,

유난히 소보로 같은 빵을 좋아해요.

한입 베어 물면

위에 붙어 있던 비스켓 같은 것들이

우수수 떨어져서 금세 자리가 어지럽혀지지만,

그 달콤함에 비하면

그 정도는 별일도 아니죠.

​

또 좋아하는 게 있어요.

크림빵.

(사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편의점에서 연세우유 크림빵을 하나 사 왔어요.)

​

아마 소보로빵이나 크림빵은

저에게 단순한 간식 그 이상인 것 같아요.

​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빵들에는

어떤 특별한 감정이 함께 따라오는 느낌이 있거든요.

아버지는 낚시꾼이셨어요.

3일에 한 번씩은 꼭 낚시를 다녀오셨는데,

작게 잡아오시는 법이 없었어요.

늘 만쿨 오버였죠.

​

그럴 때면

생선을 장만할 사람이 없어서

막내였던 제가 늘 앞장서서 나섰던 것 같아요.

​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어요.

​

“왜 그랬을까?”

​

제가 제일 어렸고,

날카로운 칼을 다루기엔

사실 가장 위험한 나이였는데 말이에요.

그런데도

저는 자연스럽게 그 일을 맡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낚시를 가실 때

늘 새벽에 출발하셨어요.

그러면 어머니는

그 귀하고 귀하던 삼양라면을 새벽에 끓이셨어요.

​

누나와 저는

그 냄새에 이끌려 잠에서 깨곤 했죠.

하지만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에

깬 척은 하지 못했어요.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이불 속에서 기다렸죠.

​

그리고

아버지가 대문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가장 빠르게 몸을 일으켰어요.

​

식어버린 국물,

몇 가닥 남은 라면을

맛있게 그릇에 담아 먹었어요.

그 시간이

이상하게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

또 아버지는 낚시를 가실 때

점심으로 늘 소보로빵과 크림빵을 사 가셨어요.

물고기가 많이 잡힌 날에는

점심 먹을 시간도 없으셨는지,

한입 베어 문 이빨 자국이 남은 소보로빵이

그대로 남아 있을 때가 있었어요.

​

그걸 발견했을 때

저는 정말 반가웠어요.

​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가 낚시에서 돌아오실 시간이

참 기다려졌던 것 같아요.

​

제가 기다린 건

아버지가 아니라

남아 있을지도 모를 그 빵이였지도 모르겠어요.

“사랑의 자리” 집단을 다녀온 뒤

며칠 동안 이 기억들이 계속 떠올랐어요.

마치 제 안에

하나의 공식이 생긴 것처럼요.

​

사랑 = 음식

​

그러다 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버지는 새벽에 낚시를 떠나셨고,

저는 늘 하던 대로 벌떡 일어나

라면 냄비를 집어 들었죠.

​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라면이 온전한 채로 남아 있었어요.

완전 횡재였죠.

​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

“아, 아버지가 속이 안 좋으셨나 보다.”

​

그런데 이 기억이 다시 떠오르자

마음 한쪽이 조용히 흔들렸어요.

​

그리고 갑자기

이런 질문이 제 안에서 올라왔어요.

​

“혹시 아버지가 일부러 나를 위해 남겨 놓으신 건 아닐까?”

그 생각과 함께

잊고 지냈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올랐어요.

​

어릴 적 저와 복싱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

함께 낚시를 가서

다른 친구분들에게 제 낚시 실력을 자랑하시던 일,

중학교 여름방학 때

옆집 형을 따라 섬진강에 갔는데

전국에 물난리가 났던 그날,

아버지가 저를 데려오겠다며

그 집에서 난동을 부렸던 일까지.

​

그 기억들이 겹쳐지면서

이런 문장이 제 안에 조용히 자리 잡았어요.

​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셨다.”

​

어쩌면 아버지는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분은 아니었을지 몰라요.

​

하지만

남겨진 빵 하나,

비워두신 라면 한 그릇,

그리고 위험한 순간에 보여준 그 과격한 보호는

​

아버지 나름의

사랑의 언어였던 게 아닐까요.

어떤 기억은

정리되기보다

다시 만나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그때의 어른은 너무 서툴렀기에

마음은 종종 엇갈렸을 테니까요.

​

이제는

그 장면을 조금 더 느린 속도로 바라볼 수 있는 어른이 되었네요.

​

그 속도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다시 숨을 고르는 중인지도..

​

부산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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