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던 것은 사랑이었을지도.."-부산심리치료

몇 년 전,
모래상자를 이용한 집단 프로그램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날의 주제는
“사랑의 자리”였어요.
피규어를 이용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자리를 표현해보자’는 시간이었죠.
질문이 던져지자
다른 선생님들은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피규어를 고르고, 자리를 만들고,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었죠.
그런데 저는
한참을 꼼짝하지 못한 채 앉아 있었어요.
그 질문이
제 안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에요.
“나에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이 있었을까?”
곰곰이 떠올려보려는 순간,
이미 제 얼굴에는 인상이 찌푸려져 있더라고요.
어린 시절의 우리 집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너무 다른 환경과 상황 속에 있었어요.
기억을 더듬으려 하면
따뜻함보다는 긴장과 조심스러움이 먼저 떠올랐고,
그래서 저는 그 시절을 잠시 내려두기로 했어요.
대신
'지금의 나'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그때 떠오른 자리는
의외로 아주 분명했어요.
바로
“아내와의 식사 자리”였어요.
피규어를 하나씩 옮기며
이렇게 놓아보고, 저렇게 고쳐보며
자리를 천천히 꾸몄어요.
그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죠.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자체를 떠올리기만 해도
사람을 조금 말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나에게 사랑이라는 건 음식이구나.”
저는 옛날사람이기도 하고,
유난히 소보로 같은 빵을 좋아해요.
한입 베어 물면
위에 붙어 있던 비스켓 같은 것들이
우수수 떨어져서 금세 자리가 어지럽혀지지만,
그 달콤함에 비하면
그 정도는 별일도 아니죠.
또 좋아하는 게 있어요.
크림빵.
(사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편의점에서 연세우유 크림빵을 하나 사 왔어요.)
아마 소보로빵이나 크림빵은
저에게 단순한 간식 그 이상인 것 같아요.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빵들에는
어떤 특별한 감정이 함께 따라오는 느낌이 있거든요.
아버지는 낚시꾼이셨어요.
3일에 한 번씩은 꼭 낚시를 다녀오셨는데,
작게 잡아오시는 법이 없었어요.
늘 만쿨 오버였죠.
그럴 때면
생선을 장만할 사람이 없어서
막내였던 제가 늘 앞장서서 나섰던 것 같아요.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어요.
“왜 그랬을까?”
제가 제일 어렸고,
날카로운 칼을 다루기엔
사실 가장 위험한 나이였는데 말이에요.
그런데도
저는 자연스럽게 그 일을 맡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낚시를 가실 때
늘 새벽에 출발하셨어요.
그러면 어머니는
그 귀하고 귀하던 삼양라면을 새벽에 끓이셨어요.
누나와 저는
그 냄새에 이끌려 잠에서 깨곤 했죠.
하지만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에
깬 척은 하지 못했어요.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이불 속에서 기다렸죠.
그리고
아버지가 대문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가장 빠르게 몸을 일으켰어요.
식어버린 국물,
몇 가닥 남은 라면을
맛있게 그릇에 담아 먹었어요.
그 시간이
이상하게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또 아버지는 낚시를 가실 때
점심으로 늘 소보로빵과 크림빵을 사 가셨어요.
물고기가 많이 잡힌 날에는
점심 먹을 시간도 없으셨는지,
한입 베어 문 이빨 자국이 남은 소보로빵이
그대로 남아 있을 때가 있었어요.
그걸 발견했을 때
저는 정말 반가웠어요.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가 낚시에서 돌아오실 시간이
참 기다려졌던 것 같아요.
제가 기다린 건
아버지가 아니라
남아 있을지도 모를 그 빵이였지도 모르겠어요.
“사랑의 자리” 집단을 다녀온 뒤
며칠 동안 이 기억들이 계속 떠올랐어요.
마치 제 안에
하나의 공식이 생긴 것처럼요.
사랑 = 음식
그러다 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버지는 새벽에 낚시를 떠나셨고,
저는 늘 하던 대로 벌떡 일어나
라면 냄비를 집어 들었죠.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라면이 온전한 채로 남아 있었어요.
완전 횡재였죠.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 아버지가 속이 안 좋으셨나 보다.”
그런데 이 기억이 다시 떠오르자
마음 한쪽이 조용히 흔들렸어요.
그리고 갑자기
이런 질문이 제 안에서 올라왔어요.
“혹시 아버지가 일부러 나를 위해 남겨 놓으신 건 아닐까?”
그 생각과 함께
잊고 지냈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올랐어요.
어릴 적 저와 복싱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
함께 낚시를 가서
다른 친구분들에게 제 낚시 실력을 자랑하시던 일,
중학교 여름방학 때
옆집 형을 따라 섬진강에 갔는데
전국에 물난리가 났던 그날,
아버지가 저를 데려오겠다며
그 집에서 난동을 부렸던 일까지.
그 기억들이 겹쳐지면서
이런 문장이 제 안에 조용히 자리 잡았어요.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셨다.”
어쩌면 아버지는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분은 아니었을지 몰라요.
하지만
남겨진 빵 하나,
비워두신 라면 한 그릇,
그리고 위험한 순간에 보여준 그 과격한 보호는
아버지 나름의
사랑의 언어였던 게 아닐까요.
어떤 기억은
정리되기보다
다시 만나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그때의 어른은 너무 서툴렀기에
마음은 종종 엇갈렸을 테니까요.
이제는
그 장면을 조금 더 느린 속도로 바라볼 수 있는 어른이 되었네요.
그 속도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다시 숨을 고르는 중인지도..
부산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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