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길을 선택한 아이, 그 첫걸음"-부산심리치료
- cinogun
- 2025년 12월 13일
- 2분 분량

며칠 전,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는
평소보다 조금 더 조용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마치 말하지 못한 문장을 목에 삼킨 채로
앉아 있는 사람처럼요.
그 아이는 부모님의 이혼 소식을 전했어요.
그 말에는 담담함과 충격,
두 가지가 동시에 비치는 이상한 결이 있었죠.
그리고 이어서 그동안 자신이 버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빠에게 처음으로 털어놓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죠.
이 아이가 지금 익숙함을 버리고 처음으로 어려운 길을 선택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 아이는 오랫동안 자신을 지키기 위해 커다란 갑옷을 두르고 살아왔어요.
엄마를 괴롭히던 가족들로부터 엄마를 지키기 위해
덩치를 키우고, 강한 척을 하고,
‘약한 소녀’였던 자신을 몰아세우며 살아야 했죠.
최근에서야 그 모든 억눌린 기억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아빠에게—내어놓았다고 해요.
그 말을 하는 아이의 표정은 조금 굳어 있었지만,
그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가벼운 빛이 비쳤어요.
그래서 물었어요.
“표정이 조금 가벼워 보여. 어떤 마음이야?”
아이의 대답은 짧지만 분명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기 때문이에요.”
그 말은 어쩌면 ‘이제 숨을 조금 쉬어도 되겠다’는 신호였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상담 내내 그 아이는 질문에 엉뚱한 답을 하거나
“잘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어요.
그 모습은 낯설지 않았어요.
오히려 너무 익숙했죠.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흔히 사용하는 오랜 생존 방식.
그래서 조용히 다시 물었어요.
“이렇게 말하는 너의 마음은 뭐야?”
그 순간 아이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어요.
눈동자가 떨렸고, 몸이 미세하게 굳었어요.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마 전 지금 회피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말 뒤에는 조금의 체념,
그리고 아주 작은 자기 이해가 숨어 있었어요.
이 아이는 스스로 알고 있었어요.
자신이 상처 앞에 서는 걸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그 두려움 때문에 오랫동안 익숙한 회피의 길을 걸어왔다는 걸요.
“저는 이 방법밖에 몰라요.
이 방법만이 익숙해요.”
그 말에는 냉소도, 포기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내가 바뀌고 싶어 한다는 걸 너도 알아줘’라는
마음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들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천천히,
그리고 정말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쌤은 니가 어릴 때 그 방법이 꼭 너에게 필요했을 것 같아.
그리고 지금 너는 조금 변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여서 반가워.”
아이의 눈동자가 아주 잠시 흔들렸어요.
조금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그 두려움을 견디려는 얼굴이었어요.
“너는 처음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어. 그건 중요한 변화인 것 같아.”
이 말을 듣는 아이의 표정은 긴장되어 있었지만,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어요.
작게라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피어나고 있었어요.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익숙한 길은 편하지만,
그 안에는 늘 어둠이 있죠.
반면 어려운 길은 두렵지만,
성장이라는 빛이 따라와요."
아이의 두려움은 분명히 컸지만,
그 두려움 앞에 서 있는 태도는 더욱 컸어요.
그리고 문득 떠오르던 문장.
“나는 상담자가 아니라,
함께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두려움을 멈출 순 없어요.
그렇지만 그 두려움 앞에서
‘나도 같이 떨고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상담자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래서 오늘 그 아이 앞에서도 조용히 마음속으로 말했어요.
너 혼자 떨고 있는 게 아니야.
쌤도 네 곁에서 함께 떨고 있어.
아이의 작은 변화는 그 떨림 속에서 태어나고 있었고,
그 떨림은 이미 새로운 길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어요.
우리는 모두 익숙한 길을 사랑해요.
그 길은 안전해 보이고, 덜 아픈 것 같고, 덜 흔들려요.
하지만 진짜 변화는 언제나 어려운 길에서 태어나요.
그 아이가 선택한 건 바로 그 어려운 길이었고,
그 길의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나는 알고 있어요.
누군가는 말했죠.
“성장은 두려움이 사라졌을 때가 아니라,
두려운데도 계속 발을 내딛는 순간에 일어난다.”
오늘 나는 또 한 번 배워요.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하다는 것을. 그 용기 앞에서 나는 그저 함께 떨 수 있는 한 사람이 되면 좋겠네요.
부산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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