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심리상담 | 착한아이증후군 원인, 어린 시절 감정 억압의 영향
이 글은 부산게슈탈트심리치료센터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또 내가족 얘기로 시작해야 할 것 같네요
아마도 그 시절이 지금의 저를 가장 많이 만들었기 때문일 거예요.
자주 습기가 차서 곰팡이 냄새가 나던 작은 방,
겨울이면 연탄 한 장으로 버티던 밤,
그리고 늘 무언가 부족했던 집안의 공기까지.
저는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사람들은 막내라고 하면 대체로 귀염받고
사랑 많이 받으며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하지만 제 기억 속 어린 시절은
자주 병원을 다니던 장면들로 남아 있어요.
엄마는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지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어요.
그래서 자주 업혀 병원에 다녔고
가족들은 농담처럼 “너는 업혀 다녀서 오다리가 되었다”라고 말하곤 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병원에 다녀와 마루에 누워 있으면
오가던 가족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순간이 싫지 않았어요.
아니, 사실은 좋았어요.
그 눈빛이
저에게는 관심이었고 사랑처럼 느껴졌거든요.
저는 형과 누나들을 보며 자랐어요.
그리고 아주 어린 마음으로
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형은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누나는 무책임해 보였어요.
어린 저는
이미 힘겨워 보이는 가족 안에서
누군가는 더 착해야 한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형과 누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했어요.
착한 아이가 되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제가 말하는 ‘착한 아이’는
단순히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아니었어요.
욕구와 감정이 올라와도
스스로 억누르고
부모님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이였어요.
서운해도 참아야 했고
화가 나도 웃어야 했고
원하는 게 있어도 말하면 안 되었어요.
가족이 힘든데
내 감정까지 보태면 안 된다고 믿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저는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살피는 데 익숙했어요.
누군가 불편해하는 표정,
실망하는 말투,
조금이라도 차가워진 분위기에
유난히 민감했어요.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는 점점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보다
‘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지’를 먼저 배우게 되었어요.
몇 달 전부터 부산게슈탈트심리치료센터상담실(부산심리상담)에 찾아오는 한 친구가 있어요.
20대 중반인데도 어딘가 앳된 인상을 가진 친구예요.
그 친구는 상담 초반까지
상담실에 오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어요.
상담자인 제가 원하는 대답을 했고
웃기지 않은 순간에도 웃음을 보였어요.
그리고 상담이 끝난 뒤 혼자 남으면
그런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져
자괴감에 빠진다고 했어요.
무엇보다 그 친구가 가장 힘들어했던 건
감정이 올라온다는 사실 자체였어요.
슬픔이 올라오는 것도,
화가 나는 것도,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도
그 친구에게는 너무 낯설고 불편한 일이었던 거예요.
왜냐하면 그 친구가 살아온 방식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삶이었으니까요.
우리는 그 이야기를 매 회기마다 나눴어요.
“당신이 감정을 드러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요?”
그러면 이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들이 나를 싫어할 것 같아요”
그 친구는 어린 시절
교회 공동체 안에서 알 수 없는 무시를 당했다고 했어요.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고 ..
하지만 어린 마음에 내린 결론은 분명했어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
그렇게 그 친구는
점점 자신을 감추는 법을 배워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이런 말을 했어요.
“한번도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먼저 말하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마음이 참 먹먹했어요.
원하는 음식을 말하지 않았다는 건
단순한 식사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그건
‘내 욕구는 중요하지 않다’는 삶의 태도였고
‘내가 원하는 걸 드러내면 안 된다’는 오래된 믿음처럼 들렸어요.
그 친구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통제해왔던 거예요.
그러다가 며칠 전
상담 중에 한 단어가 떠올랐어요.
“소외받았다”
그 친구는
그 단어를 말할 때마다 울컥했어요.
마치 오랫동안 설명되지 않았던 감정에
처음 이름이 붙는 순간 같았어요.
하루는 부산게슈탈트심리치료센터 상담(심리치료)에서
자신을 교회 안에서 소외시켰던 여자아이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했어요.
그 날 처음으로
자신의 분노를 드러냈어요.
그런데도 친구는 계속 제 눈치를 살폈어요.
화내도 괜찮은지,
이런 감정을 보여도 버려지지 않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어쩌면 그 친구에게 감정을 드러낸다는 건
단순히 표현의 문제가 아니었는지도 몰라요.
그건 관계가 끊어질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고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연결된 일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했어요.
그리고 지난주
마침내 두 감정을 만났어요.
“죄책감과 수치심”
그 친구에게는
감정과 욕구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마치 죄처럼 느껴진다고 해요
그래서 물었어요.
“어떤 죄를 지었던 거예요?”
그 말에 친구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어요.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그에게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가족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너무 이기적이고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믿고 있었던 거예요.
그 순간 저는
어린 시절의 제 모습도 함께 떠올랐어요.
누군가는 사랑받기 위해 착해졌고
누군가는 버려지지 않기 위해 감정을 숨겼어요.
겉으로는 참 비슷해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늘 같은 외로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나로 있어도 괜찮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 질문 하나를 확인받고 싶어서
오랫동안 애써 살아온 건지도 모르겠어요.
부산게슈탈트심리치료센터 상담은 때때로
새로운 답을 배우는 과정이라기보다
오랫동안 금지했던 감정을 다시 만나는 시간 같아요.
울면 안 된다고 믿었던 사람은
울음을 배우고,
화내면 버려질 거라 믿었던 사람은
조심스럽게 분노를 말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감정은 잘못이 아니라는 것"
"욕구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
나를 드러낸다고 해서
사랑이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요.
아직 그 친구는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일이 어렵다고 말해요.
하지만 저는 알아요.
누군가 평생 숨겨왔던 마음을 꺼낸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용기라는 걸요.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조금 천천히,
조금 더 깊게
자신의 마음 안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어요.
부산게슈탈트심리치료센터에서는 이런 마음들을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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