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은 여전히 당신 안에 있어요"-부산심리치료
- cinogun
- 5월 18일
- 2분 분량

그녀가 말했어.
“도망치고 싶어요.”
그 말엔 정말 많은 게 담겨 있었어.
매일같이 반복되는 싸움,
숨 막히는 집안 분위기,
끝없이 이어지는 육아…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느낌.
오랫동안 개인상담도 받고,
부부상담도 받아오며 애써왔지만,
이제는 더는 버틸 힘조차 남지 않은 듯했어.
“남편이랑 말 안 하고 누워 있었는데,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겨우 말을 걸더라고요.
그것도 말 꺼내는 방식이 너무 싫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했어.
말 걸어주는 타이밍도 너무 늦었고,
시작부터 엉뚱한 얘기를 꺼내서,
그걸 바로잡다 보면 또 감정 상하고,
결국 원래 하려던 얘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서로 피곤해지는 대화.
그리고 끝도 없는 오해.
그런 게 계속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말 자체가 무서운 거야.
그러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 있었어.
“남편이 미우니까, 아이까지 미워지는
저… 이상한 거죠?”
그 말,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어.
그녀는 지금 자기 자신을 깊이 의심하고 있었거든.
‘내가 엄마로서 괜찮은 사람인가?’
‘이런 감정을 가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녀 안에는 이미 수많은 목소리가 있었어.
엄마로서 이렇게 느끼면 안 된다는 판단,
아내로서 더 참아야 한다는 의무,
며느리로서 버텨야 한다는 기대…
그 모든 걸 혼자서 다 짊어진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거야.
“우리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아요.”
그 말에는 엄마에 대한 반감만 있는 게 아니었어.
사실은 그 안에 사랑받고 싶었지만
채워지지 않았던 시간들이 있었고,
지금의 자기 모습이 어쩌면 그 엄마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어.
느리고, 지독하고, 너무나 고된 시간들 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던 거지.
그래서
“도망치고 싶다”
는 말은 그냥 잠시 쉬고 싶다는 말이 아니야.
진짜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마음,
모든 역할에서 내려놓고
그냥 ‘나’로 숨 좀 쉬고 싶은 간절함이었어.
나는 쉽게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어.
그 말이 어쩌면,
계속 그렇게 버티라는 뜻으로 들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대신 이렇게 말했어.
“당신에게는 부드러운 부분이 있어요.”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잠깐 멈췄어.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이었고,
그 눈빛 속엔 뭔가 말 못한 감정들이 스쳤어.
내가 본 그녀는,
누구보다도 부드러운 사람이었거든.
고통 속에서도 자기 감정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그 미움 뒤에 있는
슬픔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사람.
그녀는 진짜 도망치고 싶은 만큼 힘들었고,
동시에 여전히 애쓰고 있는 사람이었어.
나는
"그 애씀이, 그 부드러움이, "
결국 그녀를 지켜줄 거라고 믿고 싶었어.
말없이 혼자 견디는 그 시간이,
언젠가 그녀 자신을 더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기를…
나는 그 마음을 함께 붙잡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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