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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기 위해 애써온 시간들"-부산심리치료

5월 4일
2분 분량

부산심리치료

“일하기 싫어 도망쳤어요”

​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 말은 가볍게 던진 농담처럼 들렸지만,

어딘가 오래 눌려 있던 무언가가 함께 따라 나오는 느낌이었어요.

​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던 그녀는

최근 갑자기 모든 것이 싫어졌다고 했어요.

​

회사에서 잘리기를 바랄 만큼,

그 자리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다고요.

​

그래서 결국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

그런데도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덤덤하게 꺼내기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때의 기억을 말할 때도

그녀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

가족 나들이를 갔던 날,

욕실에서 쓰러진 엄마를 발견했고

행복했던 그날의 풍경은 순식간에 장례식장으로 바뀌었다고 했어요.

​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엄마를 떠나보낼 시간도 없이

경찰서를 오가며 진술을 해야 했다고요.

​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는 마치 남의 일을 설명하듯 담담했어요.

이후 아버지는 새엄마를 맞이했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분을 ‘엄마’라고 부르며 살아갔다고 했어요.

​

그러다 문득 이렇게 말했어요.

​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와의 시간들이 생각이 나지 않아요”

​

기억이 없는 건지,

기억을 꺼낼 수 없는 건지,

그 경계는 쉽게 알 수 없었어요.

​

그녀의 삶은 그렇게

어딘가 비어 있는 채로 흘러온 것처럼 느껴졌어요.

스무 살이 넘어서도

이해되지 않는 연애들을 반복했고

어느 날 갑자기 혼자 외국으로 떠났다고 했어요.

​

그곳에서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고 했어요.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열심히 일한 만큼 인정도 받았다고요.

​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

“열심을 다해야 했나봐요.

그래야만 그들이 나를 인정할 것 같아요”

​

그 말 속에는

‘그냥 있어서는 안 되는 나’가 느껴졌어요.

​

그래서 물었어요.

​

“왜 그렇게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나요?”

​

그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어요.

​

우리는 몇 주 동안

그 질문 주변을 맴돌며

조금씩 이야기를 쌓아갔어요.

그러다 며칠 전,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어요.

​

“안그러면 누군가 떠날 것 같은 무서움이 있어요”

​

그 말이 나오자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 향했어요.

엄마였어요.

​

떠나보낼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갑자기 사라져버린 존재.

​

그 경험은

그녀 안에서 아주 조용하게,

하지만 끈질기게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상담실에서 우리는

함께 그녀의 엄마를 만났어요.

​

사진 속의 엄마를 바라보며

그녀는 울음을 참다가,

또 터뜨리기를 반복했어요.

​

울면서 웃고,

웃으면서 울던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

그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어요.

그동안 미뤄두었던 시간,

꺼내지 못했던 마음,

붙잡지 못했던 이별이

한꺼번에 흘러나오는 느낌이었어요.

​

그리고 한참 뒤,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

“참... 참 힘드네요”

​

그 짧은 한 문장에

수많은 시간이 담겨 있었어요.

어쩌면 그녀는

누군가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왔던 것인지도 몰라요.

​

열심히 일하고,

인정을 받고,

관계를 붙잡으려고 했던 이유가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면요.

​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애쓸수록

마음은 더 지치고

결국은 도망치고 싶어지기도 해요.

그녀는 지금,

처음으로 멈춰 서서

자신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어요.

​

떠나지 않기 위해 살았던 삶에서

이제는

자신을 떠나지 않는 연습을

조금씩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

우리에게는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요.

​

그리고 그 시간은

아마도 그녀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자신과 만나게 해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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