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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존재와 더불어 존중을 보냅니다"-게슈탈트 전체성

작년 어느 늦봄,

한국게슈탈트상담심리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주제는 『게슈탈트 집단치료의 관계적 접근』.

그 자리에는 미국에서 오신 두 분의 게슈탈트 심리치료사,

 Peter Cole과 Daisy Reese 부부가 함께했습니다.

그분들의 상담 시연도 깊은 울림이 있었지만,

제 마음을 가장 강하게 움직인 건 Daisy의 말투와 태도였습니다.

그녀는 내담자와 대화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존재와 더불어 존중을 보냅니다.”


그 말은 형식적이지도,

만들어낸 듯한 인위적인 문장도 아니었습니다.

마치 오래도록 그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여온 언어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담백하고 단정하면서도

그 안엔 놀라운 따뜻함이 담겨 있었지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제 안에 조용한 울림이 일었습니다.

위로나 칭찬도 아닌,

‘존재 자체를 향한 환대’라는 느낌.

감정이나 말,

행동을 넘어 그 사람 전체

 " 과거의 시간과 현재 여기에 함께

존재하는 그 사람 전체 "

 를 향한 인사 같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살아오면서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요. 없었습니다.

부모님에게서도, 가족이나 친구에게서도,

어쩌면 평생 한 번도요.

그 서글픈 깨달음과 동시에 또 하나의 물음이 생겼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있었을까?”


그날 이후,

저는 그 문장을 마음속 깊이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상담 장면에서 멋있게 쓰기 위한 말이 아니라,

제 삶의 태도이자 존재의 자세로 삼고자 했습니다.

상담실에서 내담자를 만날 때,

그분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

어떤 감정을 표현하든,

그 존재 전체와 함께 있으려고 애썼습니다.

그의 서툼과 상처, 저항과 침묵마저도 함께 품어보려 했습니다.

말보다 먼저, ‘태도’로 그 곁에 있으려고 했습니다.


나와 잘 맞는 내담자와는 자연스럽게

그런 존중의 마음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나의 가치와 어긋나거나,

내면의 저항이 강하게 올라오는 상황에서는

이 말을 꺼내는 것조차 위선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있는가?”

“내 판단과 감정을 알아차리면서,

그와 함께 머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특히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내담자,

방어가 강하거나, 폐쇄적이거나,

혹은 나를 거부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내담자 앞에서는

흔들리는 제 자신을 자주 마주했습니다.

‘이 상담은 잘 안 맞는 것 같아.’

‘이 분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것 아닐까?’


속에서 그런 말들이 올라올 때면,

바로 그때야말로 이 말을 다시 꺼낼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존재와 더불어 존중을 보냅니다.”

이 말은 조건을 붙이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해낸’ 존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향한 인사입니다.


그 한마디가 내담자의 마음을 서서히

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내담자의 눈빛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고,

한숨처럼 가벼운 말 한마디가 따라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네요.”


물론 항상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내담자는 여전히 저를 시험했고,

어떤 내담자는 거리감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저는 ‘결과’보다

‘태도’를 붙잡으려 했습니다.

내가 이 존중의 태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

내가 이 말을 진심으로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도 똑같은 존중을 보내고 있는가.


놀랍게도 이 문장을 자주 사용하면서

제가 가장 자주 마주하게 된 것은 ‘내 자신’이었습니다.

“나는 내 존재를 존중하고 있는가?”

이 물음은 상담실이 아닌,

일상에서 더 자주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

부족하고 서툰 나,

실수하고 흔들리는 나,

불안과 두려움을 품고 있는 나에게도

“존중을 보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 말은 더 이상 기술이 아니라 제 삶의 진실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그렇게 말해준 적이 없더라도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스스로에게도 건넬 수 있다면,

조금 더 따뜻하고 단단한 삶의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오늘도 저는 이 말을 마음속에서 조용히 되뇌어봅니다.

“당신의 존재와 더불어 존중을 보냅니다.”


게슈탈트 전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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