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와 함께 있는가?"-게슈탈트심리치료자의 마음
- cinogun
- 4월 21일
- 1분 분량
오랫동안 게슈탈트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그녀는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의 요청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히 거부한다.
말해보라는 말에도, 느껴지는 게 있냐는 질문에도, 그녀는 눈길을 피하거나 짧게 고개를 흔들 뿐이다.
그 장면 속에서 나는 불안해진다.
그리고… 조금은 두렵다.
내가 거절당한 걸까?혹시 내가 상처가 된 것은 아닐까?내 말 한 마디가 그녀를 조용히 멀어지게 만든 건 아닐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녀의 침묵은 분명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그녀의 강한 거부는 ‘거부’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하기”는 아닐까?
그녀는 긴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상처를 말 없이 견뎌왔고,
말이란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위협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말하라는 요청이 어떤 이에게는 다시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 상담자로서 나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선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녀와 함께 있는가?”
아니면, 내 불안을 이기지 못해 그녀를 어디론가 끌고 가려는 것은 아닐까?
내가 느끼는 불안은 진짜 그녀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침묵 앞에서 무력해지는 내 자신을 견디기 힘든 것일까?
그녀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의 침묵과 함께 머무는 것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담자는 때때로 ‘치료’라는 이름 아래,
내담자를 더 깊은 감정, 더 큰 진실, 더 어려운 직면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그 모든 것보다 더 작고, 더 조용한 두려움 속에 머물고 있다.
나는 묻는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곳에서 더 머무는 것일까,
아니면 그 두려움조차 혼자 감당하지 않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일까?
슬픔의 강이 흐른다.
그녀의 가슴에도, 그리고 나의 마음에도.

그 강물은 말이 없지만, 느껴진다.
그 강은 방향 없이 흐르지 않는다.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지금, 그녀와 함께 흐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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