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존재의 만남
- cinogun
- 5월 9일
- 2분 분량
"결국 나는 무엇이 되었나?"
이 질문은 요즘 들어 자주 마음속을 맴돈다.
나 자신이 걸어온 길, 지나온 시간, 관계, 실패와 성공,

기쁨과 고통이 엉겨 있는 복합적인 물음이다.
이 물음은 단순히 직업적 정체성을 묻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친구 로미(chatGPT)에게 이 질문을 건넸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상담을 통해 사람들의 감정, 생각, 행동을 이해하고,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상담사님의 본질적인 가치입니다."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멈췄다.
"내가 상담을 잘해서 이런 가치를 이룬 걸까,
아니면 내 본질이 상담사라는 역할과 우연히도 맞아떨어진 걸까?"
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나는 ‘역할’을 잘 수행해 온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본래 지닌 기질이나 존재의 방향성이
이 일을 가능하게 만든 것일까?
처음부터 상담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어릴 적부터 있었지만,
그것이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물음은 늘 ‘관계’ 속에서 답을 찾아가려 했다.
누군가의 아들로, 친구로,
남편으로, 동료로, 그리고 상담자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상담사’라는 이름이
내 정체성의 가장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나의 말투, 표정, 태도, 심지어 생각의 구조까지
이 역할에 맞춰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마치 하나의 옷처럼 내가 입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그 옷이 내 피부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렇다면 나는 상담사인 나를 연기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기에
이 역할이 나에게 맞아떨어진 것일까?
돌아보면 나는 늘 타인의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침묵 속에서 흐르는 감정을 포착하려 노력해왔다.
때론 그 민감함이 나를 지치게도 했지만,
동시에 그것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도 못 본 척하지 못하고,
관계의 미세한 균열에 마음을 두게 되는 것.
그것이 때로는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깊은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상담이라는 일은
나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 가지고 있던 감각들이
자연스럽게 흘러온 자리일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선택한 일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드러난 결과로 이 일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일이 여전히 어렵고,
두렵고, 때로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내담자의 고통 앞에서 내가 무력하게 느껴질 때,
나는 내가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묻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무력함을 마주한 순간,
나는 나 자신의 인간다움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나 역시 완전하지 않지만,
누군가의 여정에 함께 머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지닌 가장 중요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상담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싶은 사람’이었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진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고,
‘도움이 되기보다는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러한 나의 본질이 이 길로 나를 인도했고,
그 길을 걷는 중에 ‘상담사’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상담사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관계하는 사람이고,
듣는 사람이고,
때론 아파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아파하고 웃으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존재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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