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쓴 뒤로 시간이 꽤 흘렀네요. 최근에는 많은 내담자를 만나고 있고, 상반기 안에 논문을 마무리하려는 마음에 신경이 그쪽으로 많이 쏠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일은 뒤로 밀려났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켠에서는 계속 이런 생각이 올라왔어요. ‘글을 써야 하는데…’ 사실 내 블로그를 꾸준히 보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왜인지 모르게 작은 부담처럼 남아 있네요. 그래서 잠깐 멈춰서 제 마음을 들여다보았어요. 지금 내 안에는 무엇이 올라오고 있는지요.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기분 나쁜 느낌의 불안이었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일이 잘 풀리고 있는 시기인데도 이런 감정이 올라온다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더더욱 이 감정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감정은 꽤 오래된 친구 같은 존재였어요. 늘 내 삶의 어떤 순간에 슬그머니 나타나곤 했던 녀석이었죠. 물론 이 친구는 평안함을 방해하기도 해요. 괜히 불안을 만들어내고, 괜찮은 상황에서도 마음을 불편하게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늘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있었어요. 아침 출근길에 이 느낌이 들면, 어김없이 무언가를 놓고 나온 날이 많았어요. 그리고 그 덕분에 다시 돌아가 챙길 수 있었고, 실수를 막을 수 있었죠. 그래서 이 녀석이 마냥 싫지만은 않아요. 고마운 구석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걸까?’ 이 지점에 오면 늘 떠오르는 제 패턴이 있어요. 상담에서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설 때’, 오히려 내담자를 놓치게 되는 순간들이요. 충분히 함께 머물러야 하는 자리에서, 저는 반걸음 앞서 나가 있더라고요.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이해와 해석이 먼저 나가 있는 거죠. 슈퍼비전을 통해 오랜 시간 피드백을 받아왔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부분이에요. 그래서인지, 이 기분 나쁜 친구는 또 한 번 저를 멈추게 했고, 돌아보게 했어요. 그 점에서는 참 고마운 존재이기도 해요. 몇 주 동안 한 내담자를 만나고 있어요. 그녀는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처음 그녀와 대화를 나눴을 때, 저는 두 번 놀랐어요. 한 번은 그녀가 사용하는 문장과 언어의 결에서, 또 한 번은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방식에서 느껴지는 통찰력에서요. 그런데 가장 놀라웠던 건 따로 있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힘들었던 삶을 이야기하면서… "웃고 있었어요" 마치 자신의 인생을 서술하는 한 명의 작가처럼, 조금은 떨어진 자리에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어요. 어쩌면 그것은 그녀의 직업이 만들어낸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혼자서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낸, 힘 있는 사람이에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감당해온 사람이기도 하고요. 최근에 그녀는 아픈 이별을 겪었고, 도망치듯 부산에 있는 친정으로 내려왔다고 했어요. 그곳에서 그녀는 위로를 받고 싶었고, 그저 가족과 함께 있고 싶었다고.. 그런데 며칠 전, 동생의 한마디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와 동생은 자꾸 몸가짐을 잘하라고 해요. 실수하지 말라고 해요” 그 말은 그녀에게 이렇게 들렸다고 해요. ‘우리와 같이 살려면 우리의 틀에 맞춰야 해’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그녀의 눈에는 그동안 참고 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올라왔어요. 어린 시절부터 그녀에게 가족은 기댈 수 있는 존재라기보다, 맞춰야 하는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자신을 구겨 넣고,,,, 숨을 죽이고,,,, 최대한 작아져야만 관계가 유지되는 방식이었죠. 조금이라도 몸을 일으키면, 작은 숨이라도 내쉬면, 곧바로 비난과 질책이 돌아왔던 시간들. 그녀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버텨왔어요.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여전히 가족의 기대 안에서 자신을 맞추며 살아왔던 거죠. 그런데 이번에는, 그 끈이 끊어진 것 같았다고 해요. 그녀는 자그맣게 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어요. “가족이 아니었던 거예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담겨 있어요. 상실, 분노, 허무, 그리고 어떤 깨달음까지. 그녀가 그동안 붙잡고 있던 것은 아주 가늘고 연약한 끈 하나였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끈이 끊어지는 순간, 그녀는 비로소 자신을 보게 된 것 같았어요. 마지막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제는 관계를 먼저 끊어내고 싶다'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그녀가 드디어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아픈 마음과 함께, 조용히 지지의 마음을 전했어요. 돌아보면, 내가 느꼈던 그 기분 나쁜 불안과 그녀가 마주했던 깊은 두려움은 어쩌면 서로 닮아 있는 감정인지도 모르겠어요. 겉으로는 불편하고 피하고 싶지만, 그 안에는 나를 향한 어떤 방향이 담겨 있었던 것 같아요. 내 불안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신호로 나를 잠시 멈추게 했고, 그녀의 두려움은 '더 이상 자신을 구겨 넣지 않아도 된다'는 어떤 경계 앞에 서게 해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감정들이 꼭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조용히 이끌어주는 감각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요. 오늘도 나는 그 불안을 완전히 밀어내기보다는 조금은 곁에 두어보려고 해요. 그리고 그녀 역시, 그 두려움을 지나며 조금씩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 불편한 감정들을 잠시 외면하지 않고 가만히 손을 내어줄 때, 비로소 나 자신을 놓치지 않게 되는지도 모르겠어요.